2020/04/17

[칼럼]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통과와 회복적 정의_이재영

이재영 (KOPI 회복적정의연구소, 한국회복적정의협회 이사장)

1월 13일 드디어 국회에서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이 통과되었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66년 만에 검찰의 독점적 수사지휘권이 폐지되는 큰 변화이다. 이 변화는 단지 형사사법제도의 변화를 넘어 국민 일상의 삶의 지대한 영향을 주는 일대 큰 사회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개정안의 골자는 검사의 독점적 권한이었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 것이고 이는 곧 경찰의 일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한다는 의미이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수사를 실질적으로 담당하면서도 검찰에 모든 수사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전건송치주의에 따라 기소와 불기소의 의견을 개진하는 정도에 그쳤던 기존의 보조적 역할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경찰은 검찰과 대등한 위치에서 당당히 수사를 직접 지휘하고 결론을 내리는 동등한 사법주체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국민들에게 이중조사라는 사법적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과 동시에 조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결국 성역처럼 여겨졌던 사법부의 개혁, 즉 사법민주화에 한 축이 실현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곧 사회공익의 발전으로 귀결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사실 국민들의 지지 속에 이뤄진 사법개혁의 동력은 경찰의 역할을 신뢰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독재정권과 군사정부를 거치며 무소불위의 권한을 남용해온 검찰에 대한 민주적 견제와 채찍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경찰은 어렵게 주어진 기회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민생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권한을 행사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 이를 위해 경찰이 노력해야 할 분야는 어떤 시스템으로 형사사건을 종결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다. 경찰 스스로 종결기준을 세워 형사사건을 마무리할 수도 있지만, 차제에 시민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해결형 사법을 도입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침 올해부터 본격 실행될 회복적경찰활동(Restorative Policing)과 수사종결권한의 행사를 연계하는 묘안이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경찰이 내세우는 구호는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경찰’상이었다. 이런 캐치프레이지 저변에는 다른 사법기관과 달리 경찰은 국민에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제야말로 국민과 함께 사법권한을 공유하고 지역사회 공동체가 치안과 민생안정의 동반자로써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사법문턱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2020년은 한국사회에서 회복적정의 철학이 반영된 공동체사법(Community Justice)의 초석을 놓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2019년 수도권 15개 경찰서에서 시범 시행되었던 회복적경찰활동의 긍정적 결과가 본격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고무적인 변화이다. 지금이야말로 경찰단계에서 피해자-가해자 대화모임과 같은 회복적정의 실천 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오랜 투쟁 끝에 경찰에게 주어진 종결권한을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로 발전 정착시킬 의무가 경찰에 주워졌다. 지금이야 말로 소위 말하는 창의적 상상력이 경찰에게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나는 경찰의 회복적경찰활동 자문위원으로, 회복적정의가 사법의 초기단계에 정착하기를 소망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을 마음으로부터 환영한다. 동시에 경찰에게 주워진 이 권한이 진정 시민을 향한 제도로 정착하도록 지원하고 감시할 의무를 느낀다. 회복적정의가 우리사회 발전의 패러다임으로 정착되는데 사법 분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경찰이 국민들의 높은 지지 속에 발현된 이번 변화를 계기로 사법의 궁극적 목적이 가해자의 처벌을 넘어 피해자와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기를 바란다. 이제는 더 이상 권력으로써의 사법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 주는 사법 서비스의 주체로써 경찰의 새로운 위상이 세워져야 한다. 인류 문화의 발전은 권한의 공유이고 힘의 균형 있는 분배라는 대원칙이 이번 수사권 조정이라는 변화 가운데 자연스럽게 드러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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