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4

[칼럼]학폭법 개정에 따른 회복적 교사의 역할_정용진

정용진 (KOPI 회복적정의연구소)

*본 칼럼은 ‘Peace Building Story 통권 4호’ 특집 ‘학교폭력법 개정에 따른 현장의 변화’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앞선 글들이 이미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과 그에 따른 학교 현장의 영향과 대응,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생각할   과제 등을 다루었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을 통해 학교폭력 상황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 말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모든 갈등 상황에서 제3자의 역할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꼭 교사에게만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사회의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거의 유일하고도 마지막 공간으로서의 학교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학교폭력 사안을 다루거나 학급 공동체 평화롭게 운영하려는 회복적 교사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로 보인다.

1. 갈등 상황에서 문제 해결의 주체는 누구인가? 당사자인가 제3자인가? 

공동체 내에서 분쟁 발생을 줄이기 위한 예방활동으로 우리는 주로 잠재적 당사자인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인성교육이나 갈등예방교육 등을 실시해 왔다. 2011년 대구 권 모군 사건 이후 교육부에서 내놓은 대책 중 하나가 매년 실시하는 학교폭력예방교육이다. 이를 통해 해마다 두 차례씩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2-3시간씩 학교폭력과 예방활동에 대한 의무교육을 받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하기도 한데, 갈등의 주체가 공동체 구성원 당사자라는 인식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상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인 것이 사실이나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였던가? 놀랍게도 갈등해결의 주체는 언제나 제3자, 더 정확히 말하면 권한을 가진 제3자의 역할이 지대했다.

생각해보자. 가정에서 언니와 동생이 다툴 때, 갈등의 주체는 언니와 동생이라는 당사자이나 이들 문제의 해결은 누가 하는가? 엄마나 아빠, 혹은 조부모나 친척 등 결국 이들보다 힘과 권한이 더 센 제3자로서의 어른들이 주로 한다. 당사자는 싸우고 제3자인 어른은 개입하여, 무엇이 문제이고, 누가 더 잘못했으니, 이리저리하라는 3단계 해결 프로세스를 제시하는 것으로 상황을 종결시킨다. 거의 같은 원리가 학교에서는 교사에 의해 작동되며, 일반 사회에서는 경찰이, 법률 프로세스 상에서는 재판관이 이 역할을 맡는다.

그러니 우리가 여태껏 해 왔던 학교폭력예방 프로그램이나 평화교육 프로그램이 갈등 당사자들에게 맞추어 이루어져왔다면, 이는 반쪽짜리 예방에 불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머지 반쪽은 갈등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제3자의 역할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2. 권한 있는 제3자의 역할을 바꾸라: 재판관에서 조정자로

개정된 학폭법에 가장 큰 의의가 있다면, 학교장 자체 종결제와 교육청에 이관하여 진행될 심의기구에서 갈등조정의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학폭 제도 아래서는 교사가 의지를 갖더라도 판결식 절차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으나 이제는 교사와 학교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대안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갈등과 문제, 그것의 해결을 의미하는 정의를 바라보는 교사의 관점과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교사는 경찰이 되어서도 재판관이 되어서도 안된다. 지금까지의 법체계가 교육자인 교사에게 경찰로서의 재판관으로서의 모자를 씌우는 상황이지만 교사는 언제까지나 교사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경찰은 잘못한 학생을 잡아감으로써 문제를 제거하고, 이들을 공권력으로 공동체에서 배제시킴으로써 정의를 이룬다. 재판관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고 가해자에게 상응하는 양형을 가함으로써, 마땅히 짊어질 죄와 벌의 무게의 형평을 맞춤으로써 정의를 이룬다. 그러나 교사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가르치고 배워야 할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잘못과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도록,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가 회복되는 경험을,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경찰과 재판관은 배제와 처벌의 원리로 이기고 지는 승패의 원리를 정의의 기초로 삼기에 결국에 갈등의 끝에는 이긴 자 혼자만 남는다. 그 결과 공동체는 파괴되고, 나중에 그 공동체로 복귀해야 할 가해자는 설자리를 잃고, 남겨진 사람들은 막연한 공포감을 갖는다. 문제 해결의 방법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악순환 고리가 확대 재생산된다.

그러나 회복적 정의의 목적은 공존에 있다. 따라서 회복적 교사는 갈등이 일어난 공동체가 깨어지지 않고 발생한 상처를 보듬고 다시 함께 살아가도록, 파괴의 방향을 성장과 배움의 방향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회복적 교사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하여금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하고, 자신의 피해와 감정을 나눈 뒤, 그러면 어떻게 문제를 바로잡을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뒤 이를 바로잡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을 통해 책임을 배우고, 그를 통해 현재의 피해자와 다시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 더 나아가 앞으로 학교를 벗어나 더 넓은 사회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누군가와 공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피해자 역시 현재 겪은 폭력과 피해가 트라우마로 남아 미래를 볼모 잡히고 공동체와 자신을 불신하는 길로 접어들거나 피해 의식을 키워가다 복수를 정의의 실현으로 오해해 되려 가해자의 길로 접어들지 않고, 자신의 피해가 회복되는 경험, 갈등과 폭력 너머의 맥락을 살피고 자신이 공감 받고 타인을 공감하는 경험을 할 때,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안전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에 다른 사람과의 공존이 쉬워진다. 이것이 갈등 상황에서 조정자로서의 제3자인 교사의 역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결과이다.

이를 위해 더 구체적으로 회복적 교사는 다음의 세 가지에 집중하면 좋겠다.

1)문제행동 자체가 아니라 행동 이면의 동기를 보기

아이들의 모든 행동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 행동의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욕구와 감정을 들 수 있다. 본인이 침해당하거나 채우려는 욕구가 행동을 추동한다. 가령 ‘재미’를 추구하려다 ‘장난’이라는 행동을 하게되고, 혹은 ‘자유’나 ‘권한’의 욕구를 채우려고 소리를 지르거나 자리를 이동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권한을 가진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는 ‘잘못’된 것이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결핍된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정당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감정 역시 행동의 동기가 되는데,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거나 긍정적 감정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 심리가 이에 대한 보상으로 행동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교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문제가 된 결과로서의 행동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으로서의 동기이며, 문제행동을 금지하는데 멈추어서는 안되고, 자신의 결핍된 욕구나 부정적 감정을 적절하게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See the unseen!”회복적 교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2)문제 아이가 아니라 상처 입은 아이로 보기

같은 맥락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가정에서나 그 이전의 학교에서의 훈육 과정 중에 본인의 욕구와 감정을 적절히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일 확률이 높다. 오히려 훈육 과정에서 부모나 교사의 응보적 조치로 말미암아 상처받고 왜곡된 자아상을 형성했을지도 모른다. 이들 양육자들이 자신들이 세운 높은 도덕적 기준을 아이들에게 제시하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어른들의 기대에 못 미칠 때 응보적 조치를 해 왔다면, 아이들은 필시 자신을 ‘부족한 존재’로 여기는 ‘수치심’에 압도되어 있을 것이고, 기대에 충족하고 인정받아 이 강력한 부정적 감정인 수치심을 극복하려고 자신을 ‘위장’하거나,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양육자와 ‘단절’을 선택함으로써 해방을 누리려 할지도 모른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적으로 문제행동을 야기하는 방어기제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수치심은 자아에 집중하게 하고 자기 모습을 문제가 없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 더 우월한 존재가 되도록 골몰하게 하지만, 죄책감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타인의 감정을 염려하는 공감능력으로 발전시킨다. 양육자의 태도와 훈육방식에 따라 아이들은 수치심 성향을 발전시킬 수도, 죄책감 성향을 발전시킬 수도 있다. 응보적 훈육방식은 수치심을 자극하지만, 회복적 생활교육은 문제가 된 행동과 사람을 분리하여 대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기보다는 스스로 문제행동을 고민하게 돕는다. 회복적 교사는 아이의 행동(Deed)가 아니라 존재의 필요(Need)에 집중하며, 그간 상처받고 헤어 나오고자 문제행동을 답습하는 아이들이,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3)문제 해결을 처벌에서 책임으로 전환하기

회복적 정의는 분명히 정의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용서하거나 덮어두거나 가볍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회복적 정의는 처벌과 응징으로 구성된 형사사법적 접근 즉 응보적 정의와 달리, 잘못과 불의를 분명히 다루되 사람들을 덜 갈라 놓는 방식으로, 그러나 더 회복하고 치유하는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다.

회복적 교사는 문제행동을 한 아이들의 내면과 동기를 살피겠지만, 공감과 연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돕는 사람이다. 아직까지 문제 학생이 책임을 질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만든 피해와 고통에 직면하고 책임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자리까지는 데려다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상황에서 당사자들, 특히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응보적 프로세스를 떠올리고, 자신이 받게 될 처벌에 대한 응보적 대응을 또한 준비한다. 사건을 은폐, 축소하거나 부정하고, 상대를 탓하거나 아니면 덮어놓고 잘못했다고 내용도 없이 인정하려 한다. 양태야 어떻든 결국 본인이 받을 처벌을 줄일 목적으로 나름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회복적 교사는 이런 심리 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회복적 질문’(자신의 행동으로 누가 어떤 피해와 영향을 입었는가? 어떤 책임을 통해 피해를 회복할 수 있겠는가? )을 던짐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만 쏠려 있던 관심과 생각을 자신 때문에 영향을 받은 피해자와 공동체에게로 돌릴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3. 권한 있는 제3자를 기르라

과장하자면, 여태껏 우리가 만들어 온 사회는 경쟁을 통해 승자에게 권한과 특권을 부여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특권사회. 권한을 가진 사람이 게임의 법칙을 마음대로 바꾸어도 되는 독점 사회. 권력자가 자신의 법을 어긴 사람에게 처벌을 가하는 응징적 사회였는지 모른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 성장하면 군대와 직장, 단체에서 이런 경험을 누적하며 점차 자신 또한 갈등 상황에서 권한 있는 제3자로 성장해 왔다. 보고 자란 것이 응보적 정의를 구현하는 재판관으로서의 제3자 모델밖에 없기 때문에, 갈등 상황에서 문제 해결의 원리가 언제나 응보적 방식만 작동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이런 갈등 사회의 재생산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제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다른 유형의 인간이 우리 공동체에 출현해야 한다. 저마다의 법과 잣대로 서로를 규정하고 재단하는 재판관들의 사회에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조율하고 갈등을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조정자들의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자신을 공감해 주는 중요한 사람과 공동체를 경험해야 한다. 둘째, 문제를 다르게 보는 시각과 다르게 해결할 능력을 길러야 한다. 셋째,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개인의 의지와 역량에 더해 공동체적 지지가 필요하다. 넷째, 잘못과 실수를 저질렀을 때 혼나고 야단맞는 응보적 조치로 수치심을 키우기보다, 문제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미안한 마음을 기르는 죄책감을 배워야 한다. 응보적 사회에서 회복적 교사가 되는 일은 실로 어렵고 지난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사실 때문에 회복적 교사가 필요하다 하겠다. 현재의 학폭법 개정은 학교 현장에 아이들이 경험하는 수많은 갈등 상황을 회복적으로 다루는 법, 다시 말해 갈등해결에 있어 조정자로서의 제3자의 역할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작동할 수 있다. 단, 회복적 교사가 존재한다면. 교육현장의 일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전국의 회복적 교사들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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