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3

[칼럼]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정의, 그리고 ‘직면’_이형우

이형우(KOPI 회복적정의연구소)

*본 칼럼은 ‘Peace Building Story 2019 창간 봄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회복적 정의가 갖는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는 ‘직면’일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문제 앞에 서로 직면하여 어떤 피해가 발생했고 어떤 책임을, 어떻게 져야 피해가 회복되고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지 당사자들이 직접 확인하고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회복에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당사자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참여의 자발성과 과정의 공정함을 통해 당사자들이 문제와 회복 앞에 직면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의미이며 그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보는 것이다.

회복적 정의가 사법의 영역에서 의미있게 실행되고 있는 제도가 화해권고제도이다. 이 제도는2010년 서울가정법원을 시작으로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피해자-가해자 대화모임으로 아직은 소년법에만 적용되고 있지만 처벌보다는 책임을 통한 피해와 관계회복에 무게를 둔, 사법적으로도 중요하고 사회적으로도 의미있는 제도이다. 문제의 당사자들이 문제 앞에 서로 직면하여 스스로 문제해결의 주체가 된다는 것,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함에도 이미 당연하지 않은 세상 속에 살기에 이러한 접근이 현실감 없게 느껴지는 만큼 더 소중하다 할 것이다.

회복적 정의가 비난 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처벌 때문이다. 회복적 정의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로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측 보다는 가해측에게 환영을 받는 이유는 “처벌하지 말고 대화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려는 접근이다”라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회복적 정의는 처벌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피해 회복을 위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처벌을 하자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우리나라 최초의 승용차인 ‘포니2’ 모델이 새로 나왔고 당시 학생부장 선생님이 그 차를 구입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A라는 친구가 B라는 친구를 괴롭히다가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걸렸는데 다음날 A라는 친구가 받은 처벌은 점심시간에 선생님의 포니2를 세차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A는 잘못을 했기 때문에 처벌권자인 선생님이 내리는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회복적 정의 측면에서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A라는 친구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은 B인데 왜 선생님의 포니2가 깨끗해야 하는가??…’

필요한 처벌이 있을 수 있고 처벌까지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처벌이 처벌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최소한 ‘이 처벌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잘못한 사람은 처벌이 내려지기 전에 문제 앞에 직면하여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처벌이어야 그나마 우리는 그것에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강릉 학교폭력사건 등 나날이 흉포화되고 있는 학교폭력 사건들 때문에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청원운동이 불붙은 적이 있고 학교폭력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슈가 되고 있다. 성인들보다 더 잔혹한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청소년들을 법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성인들과 똑같이 죄질에 따라 무기징역도, 사형도 가능하도록 해야 정신차린다는 요구이다. 정말 그렇게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

2011년, 대구에서 학교폭력 때문에 자살하는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있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로 인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학교폭력 관련법이 개정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학교폭력으로 인한 사회적 충격과 공분 앞에 마주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가해자를 아무리 강력하고 가혹하게 처벌한다고 해도 분노와 불안만 재생산될 뿐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고 경험한 바이다. 가해자를 처벌하자는 그 목소리만큼 당사자들의 직면을 통해 ‘피해자의 피해회복과 가해자의 자발적 책임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공동체의 역할과 어른들의 책임은 무엇인가’와 같은 고민이 함께 되지 않는다면 소년법을 폐지해도 계속될 문제일 것이다.

부루더호프(Bruder Hof)라는 공동체가 수백 년을 이어 올 수 있었던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사랑으로 직접 말하라(Straight talking in love)’…

갈등이 확산되는 원인은 당사자들이 문제 앞에 서로 직면하려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대를 비난하고 험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수많은 오해와 왜곡을 낳고 갈등은 확장되어 결국 개인 갈등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위기를 부르게 된다. 부루더호프 역시 수많은 갈등의 경험 속에서 이러한 원칙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사랑으로 직접 말하라…’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말하되 상대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사랑을 신뢰하자는… 직면을 위한 중요한 원칙이 아닐 수 없다.

직면을 통해 가해자가 피해 회복을 위한 자발적 책임을 지고 이를 통해 깨어진 관계와 상처 입은 공동체가 회복되며 정의를 다시 세우는 회복적 정의…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패러다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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