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17

2017 제2회 회복적정의 해외연수를 다녀와서 [정용진 소장]

미국의 회복적 학교 ‘Facing History and Ourselves New Tech’를 소개합니다.
: 2017 제2회 회복적정의 해외연수를 다녀와서

[한국평화교육훈련원 교육센터 정용진 소장]

 

해외연수의 묘미는 배운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데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말은 정확히 이번 해외연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국내에서 회복적 정의-회복적 생활교육을 배우고 연구하던 교사, 상담가, 사법연구자 그리고 회복적 정의 전문가 21명과 어린이 2명이 한데 모여 10일간의 일정으로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 다녀왔다.

<단체사진>

 

과장을 보태면, 우리는 흡사 미답지에 최초로 도달한 탐험가가 남겨놓은 기록을 따라 이제 막 현장에 도착한 후발대와 같았다. 그간 저마다 읽고 배우고 연습하고, 머리로 구상하고 그래서 자꾸 이상적인 모습을 관념의 세계에 구축하던 것을, 우리는 이번 해외연수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그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과정, 시행착오와 노력의 산물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우리보다 앞서 무언가 선한 일을 시작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돌아보면 어떤 장면은 기록보다 더 실감나고 어떤 장면은 그만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여행의 정석이다. 오히려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 예기치 않은 만남과 환대, 무엇보다 낯선 ‘사람’과 맺게 되는 신비한 관계는 여행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자, 사실 이것이야말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이번 해외연수의 가치이자 미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모든 내용과 여백을 한데 모아 배움이라 부를 수 있을테니, 이 짧은 글에서는 목격자의 제한된 렌즈에 담아 온 배움을 나누고 싶다.

 

간략한 전체 여정

당초 한국평화교육훈련원이 2회 해외연수로 미국의 오하이오(Ohio) 주의 클리브랜드(Cleveland)를 선택한 이유는 클리브랜드 교육청이 미국 내에서 가장 먼저 교육 커리큘럼 안에 회복적 정의에 기초한 갈등해결 교육과 또래조정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지역이기도 하고, 교육청 주로도 연간 5000 여 건의 갈등조정을 진행될 정도로 회복적 정의가 교육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관련된 교사 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갈등조정에 참여하는 교사와 또래조정을 실천하는 학생들이 협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나아가 이를 학교차원에서 접근하는 이른바 ‘회복적 학교’의 모델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무엇보다 컸다.
따라서 이번 연수팀은 계획을 따라 현지 교사들이 받는 갈등해결 및 학급운영 워크숍을 직접 훈련받고, 학생들에게 시행하는 또래조정(peer mediation training) 프로그램도 참관했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학교와 연계하여 어떻게 총체적인 평화공동체를 일구어 내는지 애크론(Akron) 소년법원에서 실시하는 회복적 정의 및 서클 프로그램 담당자를 만나 간담회를 갖고, 클리브랜드 시에서 후원하는 학생 리더십 및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peacemaker team 소속 담당자와 참여 학생을 만나 활동내용을 소개 받았다. 또한 한국에 “아미시 그레이스”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평화와 용서의 상징 Amish village 에 방문하여, 평화라는 개념을 종교적 신념으로 받아들여 교육은 물론 삶의 전반에서 실천하고 있는 아미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그들의 학교에도 방문해 볼 수 있었다.

 

진정한 회복적 학교의 가능성, FHNT(Facing History and Ourselves New Tech)

이번 여정 중 첫번째로 방문한 학교가 우리에게 여운과 감동이 가장 컸다. 또한 이 학교가 우리가 보기 원했던 회복적 학교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에, 이 글에서는 이 학교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하겠다.


< 복도(좌), TRR(우)>

 

Facing History and Ourselves New Tech(이하 FHNT)는 클리브랜드 서부에 위치한 공립학교로 설립된 지 5년차의 비교적 신설학교이다. 우리로 따지면 일종의 공립형 대안학교와 비슷한 개념의 고등학교이다. 이 학교는 교육철학은 Facing History and Ourselves 로, 학교의 교육방법론은 New Tech로 한다고 해서, 그 확고한 신념을 보이기 위해서인지 지금의 긴 이름으로 불린다. Facing History and Ourselves 은 새로운 교육커리큘럼으로 역사와 인종적 뿌리, 정체성과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교육내용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다인종, 다문화 국가이지만, 그만큼 언어, 성별, 피부색, 종교와 민족에 따른 차별이 일상화 되어 있고, 소수자와 약자들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각자 어디에서 왔고 자신들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정체성 교육과 ‘우리’라는 다양성이 공존한다는 공동체 개념을 우선해서 가르친다.

역사와 정체성, 다양성 교육의 출발은 특이하게도 홀로코스트, 즉 인종대학살의 참혹한 역사의 기억에서부터 시작한다. 2차대전시 나치에 의한 유대인학살부터 코소보의 인종청소, 르완다의 인종학살 등 우리는 다름이 배제로, 배제가 제거로 이어지는 슬픈 역사를 경험했으며, 미국 혹은 전세계 그 어디에서인가 이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나의 정체성과 뿌리를 배우고, 역사에서 교훈과 유산을 찾아냈다면, 지역과 공동체의 ‘지금 여기’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어떻게 평화와 공존을 다양성을 잃지 않으면서 구축해 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이를 위해 배운 바대로 직접 실천하도록 돕는 것이 이 학교의 교육방향이다.

<교육원리>

 

우리가 현장에서 이 학교의 설립자이자 교장인 Marc Engoglia와 역사교사인 Martha Verde에게 학교 설명을 듣던 때는 이제 막 도날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공교롭게도 오하이오주는 트럼프에게 몰표를 안겨준 주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은 불의와 부당한 차별을 목격할 때는 물러서지 말고 맞서 싸우고 당당히 일어서 행동해야 한다고 배운다며, 홀로코스트의 역사와 미국의 억압의 역사 중에도 불의에 항거했던 많은 사람과 마틴 루터킹 같이 정의를 위해 투쟁했던 이들이 있었다고 이야기해 주자, 우리 연수단의 현지 진행자인 Jennifer Batton 교수가 최근에 있었던 감동적인 사례를 들려주었다.

트럼프가 무슬림들은, 마치 나치 치하의 유태인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 시청에 등록하고 등록증을 받아야 한다고 하자, 이 불의와 차별에 맞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들고 일어나 “내가 무슬림이다”라고 선언하고, 무슬림으로 등록하겠다고 연대의 의사를 밝힌 사건을 이야기 해주었다. 제니퍼는 이 이야기하는 동안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혔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 바로 불의한 일이 벌어지는 그 곳에서 약하고 적은 무리들이 다양성과 평화를 일구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무엇보다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증오가 아닌 평화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척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었다.

<수업장면>

 

이런 교육철학에 더해 실용적인 교육방법론이 바로 New Tech 교육이다. 21세기 신기술교육이라 할 수 있는데, 인터넷과 뉴미디어 환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21세기 지식정보교육에 중점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는 학생들 개개인에게 최신형 맥북을 지급하고, 종이 교과서 사용을 지양해 정보 및 기술접근, 친화성 증진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이 학교의 진면목은 이런 두 가지 측면의 혁신교육을 통합했다는데 있다. 이른바 융합수업을 적용해 거의 매 수업이 2개에서 3개의 과목을 함께 진행한 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교사들도 두 사람 이상이 한 교실에서 co-teaching을 한다. 평가 방식도 수학만 지필고사를 하고 나머지 모든 과목은 프레젠테이션을 통한 상호평가를 갖게 한다. 융합수업의 예를 들면, 역사와 미술 수업을 융합할 경우 2차대전 당시 역사를 배우고, 나치와 연합군에서 사용했던 전쟁 프로파간다 용 포스터를 살펴본다. 그림과 예술이 어떻게 전쟁을 선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는지를 배우고, 어떤 부분이 사람들에게 전쟁을 선동하는 기재로 작동했는지 생각해 본다. 이후 당시 프로파간다 선전물을 평화를 위한 포스터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과제겸 프로젝트로 수행한다. 별도의 수업을 통해 창의력과 토론, 학생자치와 발표력, 미술이나 역사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자체가 학생들에게 창의력을 심어주며, 교사의 co-teaching을 보며 협력과 의사소통 방식을 배우고, 직접 다른 학생들 다양한 토론후 결과를 만들어내는 통합적 과정이다.

 

회복적 학교의 핵심가치-TRR(Trust, Respect, Responsiblilty)

학교의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은 21세기 미국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도입한 커리큘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학교를 세우는 근본 가치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TRR(Trust, Respect, Responsiblilty), 즉 신뢰, 존중, 책임이다. 이 학교에서도 학생지도에 있어서 회복적 접근을 하지만, 문제발생시 교사가 대화모임을 한다거나 서클을 진행하는 등 프로그램이 구현되기 때문에 회복적 학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들이 기본적으로 갈등해결 교육을 받고 분쟁조정자 훈련, 또래조정 프로그램을 운용할 능력을 가졌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학교의 문화 자체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에 신뢰와 존중을 바탕에 두고, 행여 문제가 발생했다면, 적절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돕는 것을 생활지도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Trust Card>

 

TRR을 구현하기 위해 학교 곳곳에 이 가치를 새겨 넣은 것은 물론, 상징적으로 신뢰와 존중, 책임을 배우게 하기 위해 학생들 모두에게 신뢰카드라는 명찰 같은 것을 패용하게 한다. 이 학교에는 별다른 생활규범이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서로 인정하는 상호 신뢰와 존중을 지켜나가기로 약속한다. 이에 동의한 학생은 신뢰카드를 갖게 되는데, 이는 일종의 특권으로 이 카드를 소지하면 어느정도 행동의 자율권을 보장한다. 이를테면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온다던지, 사물함에 다녀 온다던지 하는 자율성이 상호신뢰속에서 보장된다. 그러나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듯이 이런 특권을 남용했을 때에는 책임을 묻게되고, 신뢰카드를 반납해야 한다. 카드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선생님과 회복적 대화모임을 거쳐 본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를 정한 이후에 권한으로서 신뢰카드를 다시 찾을 수 있다. 만일 본인이 신뢰카드, 즉 권한을 회복하고 싶지 않다면, 그 학생은 권한없이 주어진 학교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어쩌면 아무런 규칙이 명시돼 있지 않은 이런 방식이 다소 혼란스러워 보일 수 도 있지만, 이런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먼저 존중의 태도로 대하고 신뢰를 보여주어 탄탄한 관계망을 만들었을 때, 즉 학교 전체가 이런 긍정적인 존중의 압력이 형성되었을 때 작동될 수 있다.

역사교사인 Martha Verde에게 학교에 말썽꾸러기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친밀하게 대하고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이미 다른 곳에서 말썽을 부리다 왔고, 교사와의 관계를 거부하는 아이라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더 친밀하게 하고, 더 가까이한다고 했다. 교사를 밀쳐내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존중을 받아본 경험, 신뢰를 쌓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며, 신뢰의 관계를 쌓는 것이 눈에 보이는 태도를 교정하는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래도 정말 포기할 수 밖에 없던 경우가 있었느냐고 묻자, 단 한번 있었는데, 학생이 학교바깥에서 사고를 쳐서 경찰에 연행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포기의 상황을 맞았다고 했다. 그 당시 학교의 교사들이 모두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고, 학생들도 울었다고 한다.

<교장 선생님(좌), 교훈(우)>

 

우리는 무엇인가 생활지도와 관련해 회복적 방식이 적용되는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보려 했지만, 이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무언가로 작동된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바로 교사의 가슴. 그 뜨거운 가슴이 학생을 대하는 자세로 전달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이 학교의 마크 교장 뒤편에 새겨진 학교의 교훈이 새롭게 읽힌다. “When Given a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옳은 일과 친절한 일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면, 언제나 친절함을 선택하라” 적어도 이 교훈의 첫번째 적용대상은 학생이 아닌 교사인 것이다. 학생의 문제행동을 목격할 때, 교사의 권한으로 교정할 것인가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 안에서 인도할 것인가, 즉 친절할 것인가의 기로에 놓일 때 교사들은 친절함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절함이라는 말은 유약한 인상을 풍긴다. 너무 허용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준다. 그러나 의심의 안개는 실체 앞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이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확고한 신념으로 지금 미국이라는 인종과 문화와 종교와 언어의 다양성이 뒤섞여 분출하는 삶의 자리에서, 폭력과 차별과 금기와 배제의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서 존중과 신뢰, 책임의 가치를 지키며 회복적 학교를 세워가고 있다. 이번 해외연수가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값진 성과를 주었다면, 그래서 회복적 학교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연수 참가자들 모두에게는 백견이 불여일행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남겨주었다. 우리도 그들처럼.